앞 장에서 언급한 Google을 비롯하여 스탠포드 대학 출신들이 만든 글로벌 기업은 4만개가 넘는다. 2012년 한 조사에 의하면 그들이 만든 기업들의 총 가치는 2조 70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문대 중에 꼽히는 이 스탠포드 대학교의 교육대학교 부학장인 Paul Kim 교수는 이런 스탠포드의 문화를 한국 대학교의 문화와 비교하며 가장 큰 차이는 질문의 수준이라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해 한 TV 강연에서,
“한국 대학생들과 미국 대학생들의 질문은 어떻게 다를까요?”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많은 한국 대학생은, “어떻게 하면 삼성에 취업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반면, 스탠포드 대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삼성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한다고 한다. 이 질문의 차이는 생각을, 생각은 말을, 말은 행동을 우선 바꾸게 된다.
“취뽀”라는 단어가 있다. “취업 뽀개기” 라는 말인데 여기서, 9개를 넘어 10가지 스펙을 준비해야 원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영어가 아닌 TOEIC 점수를, 진짜 경험이 아닌 이력서 한 줄을 위한 인턴십과 봉사활동, 그리고 교육이 아닌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이 이뤄지진 않는지 걱정이 된다.
세계적인 명문대학만 가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라는 말은 아니다. 미국의 대학들도 취업에 유리한 경영이나 공대 쪽에 상대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취업이라는 프레임에만 몰두하는 문화가 아님은 확신한다. 대학의 본질인 진리의 탐구, 인재 양성과 교육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Paul Kim 교수도 같은 강연에서 자신이 처음 미국 대학에 입학하고 들은 음악 감상 수업에 대해 얘기하며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학생 시절의 그는 모짜르트나 베토벤 등의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를 완성하지 못 했다고 한다. 교수님께 불려가게 되고 그 이유를 설명하니 한글로 감상문을 써오라는 말을 듣고 다음 수업까지 다섯 장이나 써가게 된다. 그러자 교수는 사전을 가져오게 한 후 한 단어씩 번역을 하게 한 후 그에게 A+를 주며,
“이 수업은 영어 수업이 아니야. 음악 감상 수업이니 넌 A+를 받을 자격이 있어.”
라고 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 음악수업이지 영어 수업이 아닌 게 맞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말이다.
대학시절 휴학을 한 후 잠깐 집 근처 대학에서 교양 수업하나를 수강 한적이 있다. 이 수업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는데, 대부분 4학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학기 중반 이후 반 가까운 학생들이 결석을 하는걸 본 적이 있는데, 물어보니 취업이 되면 취업계를 신청 할 수 있고, 그러면 합법적으로 수업을 결강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제외하면 교수님들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 드렸고,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합격생들을 학기 중에 합격 오리엔테이션을 진행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꼽히는 대학 중에 하나인 그 곳도 결국 취업을 위한 관문에 불과했다. 이 후 돌아간 미국의 대학에서는 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잠시나마 몸담았던 한국의 한 명문대학교에서는 대학생이 학기 중에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 당연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시장에 안착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대기업 취업에 더 많이 치중하는 이런 대학교의 학생들에게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질 것 인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고 질문보다는 주어진 지식만을 받아 들이는 이런 학생들에게 “21세기 인문학 중심의 교육”, 혹은 “창업가 정신”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이는 사실 앞장서서 우리를 잘못 이끌어 온 각계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책망을 받아야 할 분들은 교육계와 학계의 지도자들이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싸이나 BTS, 세계 제패한 우리의 천재 바둑 기사들이나 E스포츠 선수들, 이 사람들이 만약에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예술을 배우고 운동을 배웠어도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을까?
10 년 전쯤 세계에서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논문의 피인용지수를 기준으로 5천 명의 뛰어난 학자들을 뽑은 적이 있다. 어떤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 연구가 얼마나 남보다 독창적이고 뛰어났었는지 보여주는 수치이므로 학문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뽑힌 5000명 중, 미국 학자들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일본 학자들도 약 300명이 있었다.
대한민국 학자들은 단 세 명에 불과 했다.
당시 한국은 11 번째의 세계 경제 대국이었고, 국내 언론에서는 차세대 노벨상 수상 예정자로 10명 이상의 학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태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수재들을 어린 시절부터 사고력을 죽이고 창의력을 말살시켜온 주입식 교육체계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본질을 잊고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이 혹시 되지 않았을까 심히 염려 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대학 교육의 민낯이다. 태평양 건너에서는 새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방법에 대해 논의 할 동안 우리는 기업 취업이나 공무원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그 미래는 어떨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