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의 4번타자 박병호 선수는 명실상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포탈사이트에 나와있는 그의 수상 내역을 보면 홈런왕, 타점왕에 2년 연속 시즌 MVP은 물론 한국 역사상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로 진출 하는 등 화려하기 그지 없다. 2005년 3억3천만원이라는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박병호 선수는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았고 처음부터 주전으로 기용 되며 큰 기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위의 모든 기록이 그가 입단하고 7년 뒤인 2012년 이후에 작성 된 점이라는 것이다.
사실, 박병호 선수는 소속팀 코치진과 팬들에게 오랫동안 계륵과 같았다. 타고난 체형과 파워, 그리고 성실성까지 타고 났지만 이상하게도 실전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실패한 유망주로 오랫동안 불리며 한때는 야구를 포기 할 생각까지 한 박병호 선수가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날, 여느 때처럼 열심히 손이 발이 될 때까지 스윙연습을 하던 박병호 선수는 자신의 스윙에 대해 코치와 상의를 했다.
“제가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어퍼 스윙을……”
“몸 쪽으로 들어오는 빠른 볼을 치려면 오픈 스탠스를……”
등등, 박식한 야구 지식과 스윙론으로 무장한 박병호 선수의 질문에 박종훈 전 LG 감독은,
“병호야, 우선 아무 생각 말고 공이 오면 네 스윙 믿고 휘둘러라”
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 영화같이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박병호 선수는 이 연습 때 나눈 대화를 자신을 변화시킨 계기로 꼽았다.
학생들이나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2012년 이전의 박병호 선수와 같은 케이스를 가끔 보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혹은 일본 유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 않지만 도통 결정이 안 되는 그런 분들 말이다. 그 때 항상 말씀 드리는 게 정답을 없다는 거다. 한국 대학을 간다고 인생이 꼬이고, 바다만 건너면 부와 명예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 반대로 세상에 대학교육을 받을 곳이 이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학생의 꿈과 미래를 위해 시야를 넓히라고 말씀 드린다. 이젠 유학이 아니라고, 더 좋은 교육을 받는 기회를 위해 찾아 간다고 꼭 전해드린다.
20년도 안 되는 인생을 산, 겨우 19살의 나이에 결정하기에는 뭔가 두려움이 따른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높은 학업 성취를 기록한 학생들의 케이스가 많다.
예전에 한 어머님께서 은밀히 상담을 요청하신 적이 있다. 절대 기록도 남기지 말라면서 말이다. 만나 뵙고 보니 아들이 서울 내 특목고에 재학 중인데 그 해 월드 올림피아드 수학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땄다고 하셨다. 대회를 준비 하던 중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님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무조건 미국에 있는 공대로 가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 이유를 내게 듣고 싶어 오셨다고 했다. 어머님 설명을 듣고 아이와도 대화를 나눠보니 오히려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전세계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해야 할지를 묻고 있었다. 의학에 전혀 관심도 없이 그냥 안전해 보이니까 말이다.
난 분명히 말씀 드렸다. 난 이 학생이 갈 수 있는 대학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다 제공하겠다. 이런 훌륭한 이과 인재를 원하지도 않는 전공으로 절대 보내지 마시고 세계를 무대로 살게 하시라고 말이다.
현재 이 학생은 MIT에서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왜? 안전해서? 아니다. 이 학생이 원하는 곳이었고 또 세계 최고의 두뇌들과 같이 발전하기 위해서다.
소위 대치동 키드를 데리고 오신 분들도 많다. 한번은 한 아버님께서 딸을 데리고 오셨는데, 모의고사 한 문제에 따라 대학이름이 정해지고 매번 바뀌는 교육정책에 환멸을 느낀다고 해셨다. 그날도 어머님은 대치동의 스타강사 겨울 특강 수강을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러 가시고 자신은 친구분 추천으로 받고 상담을 오셨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뭔가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씀 하신 모습을 보니 나의 19살 때가 떠올랐다. 당시 싱가포르의 미국 고등학교에서 11학년 (한국으로 치면 고2)이던 난 한국 특례입학 준비를 위해 학교를 자퇴하려 했다. 당시 많은 또래 친구들이 당연히 준비하던 과정으로 카운셀러와 교감 선생님께 뜻을 전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분들께서 내 부모님과의 면담을 요청하셨다. 바로 다음날 아버님이 학교에 오시고 1시간정도 진행된 이분들과의 면담 이 후 내 인생은 바뀌었다.
그날부터 바로 SAT를 준비하고 원서를 쓰고 결국 미국의 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는 많은 학생들의 미국대학을 비롯한 세계 명문대학 대학 진학을 돕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듣지 못한 것을 들었고, 아무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 이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