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주체성의 상실이다.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 닐 하우,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워라벨, 가심(心)비, 자기애 등으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에 의해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 성장기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듣고 세상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한다면 가질 수 있다고 자랐다.
대부분의 이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이 해당한다. 이들 중 일부는 학창시절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성적을 받은 적도 있고, 어울리지도 않는 대회에 참가해서 참가상을 받은 적도 있을 것이다. 또 일부는 부모님의 인맥으로 자신에게는 황송한 논문 참여나 인턴십을 경험 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생활기록부에 하지도 않은 수상실적이나 봉사 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부모님이 해줄 수 없는 일에 봉착한다. 만약 몇 십억이 드는 대학 기부금 입학이 불가능하다면 그 순간은 대학 입학준비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무난히 갈 거 같은 대학은커녕 생전 꿈에도 생각 안 해봤던 대학밖에 못 간다는 걸 아는 순간 좌절 한다.
이 때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을 키웠던 부모님은 아쉽게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없다.
SAT 고득점 역시 원하기만 한다고 하늘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밀레니얼 세대 학생들은 SNS 사용에도 익숙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한다. 그리고 사실 살면서 자신의 힘으로 정직하게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이때 우리 학생들은 자신을 냉정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손자병법에 나오는 자주 쓰이는 말 같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백전백승의 전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손자는 원서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을 쓰고 있다. 같은 말 같지만 좀 다르다. 지지 않는 게 굳이 이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지 않는다면 이기는 길에 더 가까워 질 수 는 있다.
시험 준비에서도 이 말은 적용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우선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원하는 결과에 가까워 질 수 있다.
그들이 알아야 하는 SAT같은 표준 시험 준비에서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상상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창의력과 치환되지 않는다. 전에 밝혔든 SAT를 보고 고득점의 가장 큰 이유는 좋은 대학에 진학에서 훌륭한 교수님들이나 동료들과 끝없이 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함이다. 이 시험은 거기까지 가는 도구로서 쓰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시험 류에서 창의력도 그다지 쓸모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학생들의 "학습된 원초적인 두려움"이랑 비슷하다. SAT는 보통 한국 학년으로 고2나 고3쯤 치른다. 그쯤 되면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학생 생활 10년차 이상이다. 거기에 학원 등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합치면 대략 [아웃라이어]에서 말하는 만시간 이상을 학생으로 보낸 것과 다름 없다. 우리 10년이상 경력의 학생들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이든 사실 정말 똑똑한 사람이든지 세상은 아직 자신들을 시험성적이 적힌 종이쪽지로 평가한다는 것을. 그래서 항상 두렵다.
어떻게든 최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한 중상위권 이상 점수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받아 온 학생들은 그 종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좋은 종이를 받아온 경력을 놓치고 싶지 않다. 거기에 10년의 세월 동안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중위권 이하 학생들은 이 두려움이 너무 학습 된 나머지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고 나태함이나 뻔뻔함으로 발휘가 된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이라도 학생으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결국 좋은 성적인건 변함이 없다. 이때 학생이라는 신분은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년차 회사 과장들이 약간의 실수나 시련을 겪으면 다음 프로젝트나 다음해에 잘 하면 만회할 수 있다. 그들은 또 그렇게 이겨나갈 멘탈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밀레니얼 자존감 바닥 사춘기 오춘기 학생들은 올해 혹은 길어야 내년에 점수를 못 만들면 재수생 소리 듣는다. 또 내가 또 더 중요한 우리 부모님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할 대학에 진학하면 인생 첫 단추부터 무너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이들에게도 세컨드 찬스가 있고 그렇게 들어도 받지만 이 시련을 이겨낼 정신 무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두려움이 학생들을 망친다. 보통 SAT 준비는 여름 8주 정도를 하게 된다. 첫 두 세주는 할만하다. 때에 따라서는 재미있기도 하다. 점수도 좀 오르고 할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쯤 넘어서면서부터 이 "학습된 두려움"이 학생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이미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고 공부는 더욱이 안 된다. 그러면 처음에 비해 성적 향상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보통 이럴 때 찾는 돌파구들 (ex. 게임, SNS, 친구들)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자신이 쓸데 없는 상상력에 휩싸인 사실을 모른 채
'좀 해보니 안 되는 거 괜히 더 열심히 하다가 바보 인증이나 하게 되겠다'
까지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때 제일 쓸데없고 효과 떨어지는 말이 “그냥 열심히 해라”류의 조언이다. 왜냐면 이들은 이미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10년차 이상 베테랑 학생으로서 당연한 상상을 하게 되고 두렵게 되고 몸과 마음은 이런 두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다른 것에 기대게 되는 것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면 이겨낼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말할 가치도 없지만 능력은 뛰어났던 독일의 히틀러도 정치적 위기에 몰렸을 때 작은 지방 선거에부터 승리 함으로서 재기 할 수 있었다.
SAT의 기본은 단어 암기다. 단어 암기를 해야 어려운 독해도 글쓰기도 가능하다. 수학에서의 기본은 그래프 그리기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에 빠져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 불쌍한 학생들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거기게 하나 더, 이런 학생들이 많아지는 6, 7주차때 교실에 들어가면 형광등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면서 해주는 말이 있다. 이 형광등은 한전에서 전기를 안 보내주거나 건물주가 전기세를 안 내면 죽은 것과 다름없는데, 그걸 알지 못한다. 단지 스위치를 올리면 불은 들어오고 하루가 종료되는 10시 스위치를 내리면 꺼진다. 이렇게 살면 너희 들의 두려움이 낄 공간이 없다라고 한다.
바로 discipline 이다. 머리를 비우고 수업시간이니까 그냥 필기하고 질문하고 자습시간이니까 공부하고 저녁엔 집에 가고 이런 1차원적인 삶을 딱 일주만 살면 사실 자연적으로 이런 상상력은 멈추게 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학생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붙히는 SAT에 주체성 확립 없이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작은 승리부터 시작하고 쓸데 없는 상상을 줄이는 거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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